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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이생망. 01

널부러진 이미아씨 2021. 2. 26. 18:29
  • 1978.04.30. 00:15 경기도 포천군 관인면 출생 (출생신고지 기준)
  • 백일 사진 없음 (왜 없는 거야..라고 하고 싶지만 어린 시절 사진은 8할 이상 찢어 버렸음)
  • 돌 사진 없음 (좀 그렇긴 해... 다들 먹고 사느라 바빴나. 왜 나만 없어.)
  • 가장 어릴 때 생각나는 것

    - 가장 어린 지 어쩐 지는 모르겠지만, 집에서 불이 났다. 작은 아버지가 뛰어 들어와 나를 데리고 나갔다.
    - 가장 어린 지 어쩐 지는 모르겠지만, 큰 이모네 가족과 담터인지 직탕인지 물가에 갔다가 평상에서 떨어질 뻔한 것.
  • 사고변별력이 있을 가장 어린 시절 거짓말을 한 이유는?

    - 만 5세 정도. 모친이 시켰다. ***라 안하면, 너를 두고 나는 가버릴거야. ***라 안하면 너를 버린 너의 엄마에게 데려다 놓겠어.
  • 만 6세 미만 받았던 체벌 중 가장 무서웠던 것은?

    - 연탄집개로 맞은 것과 한겨울 벌거벗겨진 채 집 밖으로 쫓겨났던 것. 둘 중 우위를 가늠하기 힘들다. (파리챈 우스운거야.)
  • 0세-만6세는 이생망의 시초였다.
  • 이 때의 모든 것은 나의 모든 것을 망쳐놓았으며, 망쳐진 나의 모든 부분은 전혀 나아지지 않는다.
    과거에 얽매어 있게 되며..... 언제나 구렁텅이에서 허우적 거리고 있다.

   나는 어린 시절을 비교적 다른 형제에 비해 잘 기억하고 있는 편이다. 때론 너무 상세하게 기억하고 있기 때문에 그게 나의 기억인지 주입된 기억인지 헛갈릴 정도로, 나는 그렇게 나의 어린 시절을 기억하고 있다.

 

   난~ 나나나~ 난난 나나나 나~ 쏴

 

   아버지는 직업군인이었고 생모는 전업주부였다. 부족하게 살았지만 부족한 것에 대해 불만을 가져본 적은 없다. 어린 시절이므로, 나의 불만은 소꼽놀이 할 때 붉은 벽돌이 잘 갈리지 않았다거나... 농로에서 잡은 올챙이를 반찬으로 만드는 데 칼로 자르기 너무 무서워서 덜덜 떨었던-. 그런 것이었으니까.

 

   1호 집에 살 때는 할아버지가 있었던 것같은 데... 좀 자라고 나서는 할아버지가 없었다.    별 기억이 없다.

 

   2호 집은 리사무소 같은 곳 앞에 살았다. 모쌩긴 도사견 두 마리도 있었고, 이웃집에 앵두나무도 있었다. 이웃집 앵두나무에서 앵두를 훔쳐먹다가 뒤지게 맞은 기억이 있어서-. 앵두는 죽을 때까지 안먹을 줄 알았지만, 나는 앵두를 너무 좋아한다.
오빠, 언니는 똘똘하고 말도 잘듣고 학교 공부도 잘했다. 생모는 드센 엄마 중 한 명이었다. 들은 말로는 오빠는 다섯살에 한글과 구구단을 떼었다고 하는 데 나는 그렇지 못해 으례 비교를 자주 당했다. 뭐랄까 일일학습지도 안해서 종종 맞았던 기억이. 
   머리통이 작은 편이었다. 이불을 덮고 있으면 왠 아줌마는 아기인 줄 알았다고 할 정도였다. 생모의 말에 따르면, 아기때 작고 작아서 솔개가 채간다고 할 정도였다니. 믿을 지 말지는 내 몫은 아니니.   이 때까지는 난 산타클로스의 존재를 믿었다. 싼타는 나에게 만화책을 선물해주었지. 넘나 감사하구만.   왜 때문인지 뒤지게 맞던 날이 있었다. 그게 아무래도 일일학습지 때문이었을 것같아. 생모가 오라고 했을 때 안가고 톰과 제릴 봤을 거야. 고래고래 오라고 소리를 질러서 꿍하게 갔을 때는 1차는 파리채였다. 여기 맞고 저기 맞다가 분에 못이긴 생모는 연탄집개로 나를 때렸다. 맞다가 지친 나는 "아빠가 오시면 계속해서 맞을게요.."라며 빌었다. 그렇게 맞다가 아버지가 삼양라면을 들고 퇴근했다. 라면을 먹었는 지는 잘 모르겠다.   오빠랑 언니랑 놀다가 다툼이 있었는 지... 과정은 전혀 기억이 나질 않는다. 크리스마스 즈음이었고, 뭐랄까 그때도 생모의 히스테리에 의해 발생한 것이라고 생각하고 있지만 우리 셋은 벌거벗겨져서 집 앞에 쫓겨났다. 솔직히 창피하기도 했고, 춥기도 했다. 지나가던 칠성이네 할머니가 집으로 데려가 몸을 녹여주고 집에 들어갈 수 있도록 생모를 설득했다. 처음일 줄 알았던 이 날의 수치심은 처음이 아니었던 것이다.   첫 수치심은 꼬깔콘 머리 관악대 아줌마 아들에게 성추행을 당했을 때이다. 생모는 집을 꼬깔콘 머리 관악대 아줌마와 함께 집을 비우면서 아줌마의 딸과 아들에게 우리 남매를 맡겼다. 우리가 좀 더 어리기도 했고, 어디 맡길 데가 없었나보다. 하룻밤 우리집에서 머무는 데 나는 그 오빠 옆에서 잤다. 자는 데 자꾸 내 손을 이끈다던지 내 몸을 더듬는 다던지 해서... 무서웠다. 무서워서 피하고 싶었는 데 피할 데가 없었다. 그래서 미안하게도 잠에서 깬 척 하며 언니랑 자리를 바꾸자고 떼를 쓰며 울었다. 언니도 당할 수 있다는 생각을 했는데 정작 내가 너무 무섭고 싫었다. 평생 언니에게 미안한 점이다.

 

   나는 이 때부터 거짓말의 달인이 되었다. 살기 위해서 거짓말을 했고, 존재하기 위해서 거짓말을 했다.   아빠가 출근하고 나서는 유치원 다니기 전에는 생모의 손에 이끌려 잘 다녔다. 산책 삼아 언덕을 오르고 웃으며 같이 사진을 찍고...
그리고 집에 오면 "아까 그 아저씨는 못본 거야."하던 생모의 말. 언제나 "그렇지 않으면 난 너를 두고 도망쳐 버릴거야."로 귀결되는 협박.
그래... 난 생모가 말하지 않았더라면 그 아저씨의 존재를 몰랐을 거다. 먼저 말을 한 건 생모다. 그래놓고 왜 내게 거짓말을 강요하는 거야.!!!
그때 생모는 담배도 제법 태웠다. 담배를 태울 때도... 아줌마들과 모여 고스톱을 칠 때도... 모여 맥주를 마실 때도... 왜 나는 함께였어야 하는 걸까? 차라리 안보고 몰랐더라면 지금보단 조금 더 낫지 않았을까?

 

   너무 무서운 일이었다. 나와 유대관계가 가장 깊은 사람이 나를 버리고 도망쳐 버릴 거라는 말은-.    내 성격은 소심하고, 밝으며, 어디 나대기 싫어하는 편이었다. 창피한 게 싫었고, 조바심을 내서 뭐라도 해야 하는 게 싫었다. 하지만 그런 나는 누구의 바람에 맞춰 적극적이고 매우 밝으며, 어디서나 으뜸이 되려고 노력했고 그 누구가 시키면 누구보다 먼저 나서 일을 하고는 했다. 그렇게 난 내가 원하는 대로 살지 못한다, 아직도.

 

   나는 내가 진정 원하는 것이 무엇인 지 모른다.

 

   아빠는 사랑을 표현하는 방법을 아예 몰랐던 것같다. 늘 무뚝뚝했으며- 말이 없었다. 그래도 아주 종종 막내인 나만 데리고 친구들과의 모임에 데려간다던지 매맞을 때면 조금 막아주던지 하기는 했지만. 그래도 나라는 소우주를 지켜주는 이는 아빠 밖에 없다고 생각했다.

 

   엄마의 부재가 영향이 매우 컸다. 자주 자리를 비웠으니 막내를 돌보는 건 오빠, 언니의 몫이었다. 그리고 그건 항상 재미나고 신나는 것은 아니었다.   염현수, 염현민-. 오빠의 친구와 오빠 친구의 동생이다. 현수 엄마는 생모와도 친분이 꽤 있는 편이었다. 하여 둘이 자리를 비울 때는 꼭 우리집에 현수와 현민이가 와서 놀았다. 어느날 오빠는 현수와 현민이가 있는 작은 방에 나를 불러 들이고는 자기들 고추를 보여주며 내 짬지를 보여달라고 했다. 고추가 꼬추만할 때였다. 만져보라고 했다. 빨아보라고 했다. 미친 씨부럴!!! 어디서 그런 생각을 했던 것일까. 참 의뭉스럽다. 지금도 궁금하고 따져묻고 싶지만 개같은 오빠의 성격을 알아서인지 말이 쉽게 나오지는 않는다.

 

   현수와 현민이는 나중에 또 만나게 된다.

 

   장원이 아빠도 또 만나게 되지.

 

   나는 일일학습도 하기 싫어하는 게으른 아이였다.   나는 양치 습관도 들어있지 않은 아이였다.   나는 아주 어린 나이에 가까운 지인과 형제에게 성추행을 당한 아이였다.   나는 버려지는 것에 대한 막연한 두려움으로 거짓말에 익숙해져버린 아이였다.

 

   이런 내 옆에는 온전히 나를 나로 봐주는 이가 아무도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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